" 넌 날 모르지 "
초고교급
독서광
173 / 63
남 / 일본 / O
-연갈색 노끈 5m
-무딘 나이프
-하얗고 두툼한 손수건

J
관조적인, 사색적인, 자유로운
『이래도 그만, 저래도 그만.』
그는 타인뿐 아니라 본인의 일에도 무심했다. 대화 시엔 크고 작은 반응을 내보이는 그였지만, 속을 조금이라도 들추어보면 인간에 대한 이해와
관심부터가 다소 부족함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뿐만 일까, 그는
안일하기 짝이 없는 태도를 취하곤 했다. 한없이 낙천적인 사고방식의
소유자일지, 혹은 터무니없이 간이 부은 것일지는 천천히 판단해보시길.
*
『둥실둥실 하늘 높이, 모든 것을 떨치고.』
그는 어느 누구보다도 현실을 잘 파악했다. 언제나 자신의 위치를
방관자이자 관찰자의 시점에서 바라보았기에 주제파악이 유난히 빨랐다. 쓰잘데기 없는 자존심 세우기는 '내일‘을 위해 미뤄두고, 현실에 초점을 맞추며 하루하루를 연명하는, 그런 사람이었다. 모순적이게도, 그는
이따금 허황된 꿈을 입 밖으로 감히 내뱉곤 했다. 자신이 처한 현실과
곧 닥쳐올 미래가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일까, 꿈들은 세상으로 나오자마자 기나긴 한숨과 함께 자취를 감추고 말았다.
*
『번지르하긴. 속은 어떨까나-?』
그가 사람을 판단하는 방식은 책을 분류하는 것과도 같았다. 화려한
제목과 디자인으로 시선을 사로잡는 책이라 하더라도, 하품이 절로
나오는 내용인 경우가 많으며, 고작 단어 한두 개가 표지의 전부더라도
독자를 매혹시키는 책들은 셀 수 없을 정도이다. 마찬가지로, 그에게 있어 외관은 중요치 않았다. 돈 몇 푼으로 뜯어고칠 수 있는 것이 얼굴이고,
갈아입으면 그만인 것이 옷차림 아닌가? 빙산의 일각만을 보고 모든 걸 판단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짓이라 그는 생각했다.
돌아보고 싶게 만드는 소년. 첫눈엔 결코 눈에 들어차지 않았지만, 왠지 모를 야릇한 기시감에 발걸음을 번복하게 만드는, 그런 사람이었다. 햇빛과 맞닿으면 적갈색이 되어 보이는 흑발은 단정과 거리가 멀었다. 아무렇게나 잘린 앞머리는 바람길 따라 이마를 자유로이 거닐었고, 약간 곱슬거리는 뒷머리는 부드럽게 흐트러진 결을 유지하였다. 적당히 얄팍한 눈썹 아래에선 미묘하게 올라간 눈꼬리와 차분한 검정의 눈동자가 당당히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었다. 무슨
연유에선지 그의 오른쪽 눈만큼은 거즈 뒤에 숨어있었다. 그리 높진 않지만 호선을 그리는 코와 조용히 미소하는 자그마한 입이 얼굴의 나머지를
차지하였다.
여기까지만 본다면 눈에 띌 법한 외모이건만, 이상하게도 소년은 배경에 녹아들어 있었다. 그 이유는 옷차림에 있었는데, 그는 거리의 음악가처럼 어딘가
후줄근했다. 차이나넥이 인상적인 크림빛 맨투맨과 온갖 색을 섞어놓은 듯한 슬렉스는 암갈색 멜빵에 의해 느슨히 고정되어 있었다. 끝으로, 발목까지 오는 슬렉스 아래에는 무광의 검정 워커가 땅을 밟고 서있었다.
1
너무나도 당연하지만 J의 취미와 특기는 모두 독서이다.
재력가의 아들인 그는, 주의를 기울여 책들을 수집해왔고, 수많은 글자와 여백을 탐해왔다.
현재 자신의 명의로 개인 도서관이 있으며, 극소수에게만 도서관을 개방해왔다.
도서관은 비교적 작은 규모이나, 전 세계의 진귀한 기록들이 책장을 빼곡히 채우고 있다.
2
또 다른 취미로는 피아노 연주를 들 수 있는데, 7살 때부터 배워온지라 실력이 상당하다.
이따금 전국 단위 콩쿠르에 참가하여 상을 받아오기도 했다.
3
바삭한 베이글과 시원한 자몽주스를 좋아하여 하루에 한두 번씩은 꼭 먹곤 했다.
식사의 시간대는 매우 불규칙하며, 식사량 또한 마찬가지이다.
식사예절은 무시하는 경우가 다반사지만, 격식을 차려야만 하는 자리에선 흠잡을 수 없을 만큼 신사적인 태도를 보인다.
4
겨울엔 더위를 타고, 여름엔 추위를 타는 희한한 체질.
본인도 이를 자각하고 있으며, 아마 과한 독서로 인한 운동부족 때문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다.
5
숱한 독서 때문일까, 혹은 그 이전부터였을까, 그는 머리가 상당히 좋다.
언젠가 아버지의 권유로 치러보았던 IQ테스트에 의하면 140대 초반에 이르렀다고 한다.
지능도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발전하는 법.
17살이 된 지금, 그의 IQ지수는 150에 근접했을 것이다.
6
그에게선 늘 달짝지근한 냄새가 진동했다.
그것은 무척이나 옅었고, 복숭아와 비슷한 느낌을 주었다.
달콤하지만 청량치 못하여 향기라 하기에도, 악취라 하기에도 애매한 냄새.
아마 J 스스로는 그것에 익숙해진 나머지 다른 이들의 후각을 자극하고 있다는 사실마저 잊었을 것이다.